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독일민족의 수도 '게르마니아' 건설을 위해 베를린의 관문으로 건립된 템펠호프 공항(Flughafen Tempelhof).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주요 기지이기도 했고 전투기 부품을 생산하는 공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후 베를린은 동과 서로 분단되고 쏘련은 서방진영의 서베를린마저 먹어삼킬 욕심에 1948년,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기차와 선박, 차량을 막는다. 200만의 서베를린 시민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한 것은 다름아닌 미군의 수송기. 하루에도 수 백대에 이르는 수송기가 식량과 석탄 등을 서독 지역에서 서베를린으로 운송했는데 그 많은 수송기를 수용했던 곳이 템펠호프 공항이었다. 쏘련은 미군의 물량공세에 결국 봉쇄를 1년 여만에 풀게 된다. 아직도 템펠호프 공항에는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광장과 기념탑이 있다.

이후 템펠호프 공항은 테겔 공항과 더불어 서베를린의 관문이자 통일 이후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맡지만 도심과 너무 가깝고 공항의 규모가 협소하여 대형 항공기를 수용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결국 2008년 폐쇄되었다. 하지만 공항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시민들의 지지로 공항 부지를 개발하려는 계획은 공원화로 대체되어 지금의 템펠호프 공항 공원이 탄생했다. 과거의 공항이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공연장, 심지어 자동차 경주대회의 경기장으로도 사용된다.

이제 템펠호프 공항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바로 밀려드는 난민을 수용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 한때 전쟁의 도구로 쓰이던 공항이 전쟁 이후 시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공간이자 최근에는 시민의 놀이터가 되었고 이제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도망쳐 자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려 한다.

이 공항을 건설했던 히틀러가 하늘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아마  노발대발하며 성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게 화를 내며 괴로워했으면. 미치광이가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민족의 국가는 남김없이 사라지고 그 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든 개인의 자유와 존엄,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부디 알아주었으면. 그 중심에 당신이 야심차게 만들었던 공항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템펠호프 공항에 대한 기사를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역사쟁이 타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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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6127601 2016.06.17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찬 정보 좋네요~

  2. 1466851815 2016.06.25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소식 잘 읽었습니다.~^^

  3. 1467588485 2016.07.04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소식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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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유학의 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음에도 그동안 쌓아온 얕은 지식을 되내어볼 때, 유학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윤리'라고 한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몸가짐이 바른 자가 있으니,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지만 정직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위와 관련해서 맹자에서 역시 비슷한 의미의 대목을 찾을 수 있으며 성리학을 세운 주희 역시 그의 저서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부자 사이는 서로 감싸주는 것이 천리와 인정의 지극함이다. 따라서 정직을 구하지 않아도 정직이 그 안에 있다'고 역설했다.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사법정의를 실현하여 사회를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개인의 도덕적 각성을 통한 도덕적 사회 구현이며, 이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관계인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는 서로 간에 신뢰와 화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이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윤리'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는 먼 곳에 있지 않다. 1908년 해산군인 등으로 구성된 13도 창의군이 의병장 이인영의 주도 하에 모여 서울로의 진공작전을 전개한다. 그러나 작전 시행 직전 부친상을 접한 그는 총대장으로서의 자리를 버리고 부친의 3년상을 치르기 위해 낙향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는 것이 올바른 선비의 자세라고 그는 생각했던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유학에서 강조하는 덕목인 효(孝)와 충(忠)이 충돌할 경우 효가 충에 선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창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로 사회가 시끄럽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이며, 이전에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 등의 사례에서 미루어 짐작해볼 때 현 정부에서 향후 발간할 국정 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인 방향 위주로 서술하는 보수적 역사관이 크게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 대통령의 목표는 5.16 군사반란을 '혁명'으로 고쳐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업적과 노력을 높게 평가해오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아울러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은 1989년 MBC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며 "부모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에 앞서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 질서에서 생각해볼 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에게는 국가에 대한 충(忠)보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효(孝)가 앞설 뿐이다. 다만 21세기 민주공화국의 지도자가 저런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통탄할 따름이며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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